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리폴리 백국 (문단 편집) === [[3차 십자군]] === ||[[파일:멸망당한 십자군.png]]|| || [[하틴의 뿔]] 전투 이후의 십자군 국가 판도 || 레몽 4세가 백작이 되었지만, 보에몽 3세는 후계자인 그가 자신의 곁에 있기를 바랬기에 봉신을 재편하여 트리폴리를 보에몽 4세에게 물려주었다. 이 시기쯤 시빌라와 [[기 드 뤼지냥]]의 편을 든 십자군 잔당들이 터덜터덜 트리폴리로 향했다. 당연한 이야기지만 트리폴리의 귀족들은 그들을 비난하며 그들의 왕위를 인정하지 않았고, 티레를 공성중인 몬페라토의 코라도를 지지하고 나섰다. 1188년, 살라흐 앗 딘의 군대는 트리폴리를 재차 공격했지만, [[시칠리아 왕국]]의 선량왕 굴리엘모 2세와 십자군의 반격에 의해 저지당했다. 하지만 토르토사의 대부분과 자바라 등 트리폴리 백국의 대부분 영토가 살라흐 앗 딘에게 유린당했고 트리폴리 본토를 제외한 토르토사의 내성과 [[크락 데 슈발리에]]만이 수성에 성공했다. 이 때 살라흐 앗 딘은 포로가 된 십자군 영주들을 풀어주기 시작했고, 여기에는 [[기 드 뤼지냥]]도 포함되어있었다. 트리폴리에 망명했던 친 뤼지냥파 인사들은 자신들의 임금인 기를 찾아 아크레로 행군했고 다시금 트리폴리는 조용해졌다. [[리처드 1세]]의 십자군이 [[동로마 제국]]령 키프로스를 불태우고 아크레로 향하고 있던 틈을 타 트리폴리 백국과 십자군 잔당들은 토르토사, 비불루스 등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, 안티오키아와의 육로 통행로들은 라타키아 일대를 제외하고는 되찾지 못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